오늘 공개된 현대카드 공연영상을 보니 후기를 안 쓰고 넘어갈 수가 없다.

에미넴이 주연한 자전적인 영화 [8 Mile]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보고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도록 내가 쓰는 두 개의 데스크탑에 모두 복사본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특히 랩배틀 장면은 여러 번 돌려 봤다. 얼마 전에는 랩배틀 장면 미공개 촬영본을 봤는데, 에미넴은 어딘가 다르게 멋진 구석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미넴의 노래는 [8 Mile] OST ‘Lose Yourself’이다. 2위 쯤으로 꼽을 수 있는 ‘Guilty Conscience’나 ‘Stan’, ‘Not Afraid’ 같은 곡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좋아한다. 조PD 곡 중에서 ‘소음공해’를 그렇게 압도적으로 좋아하듯이 말이다. 장난스러운 샘플링이나 섹시한 훅 없이도 그저 탄탄하고 묵직한 비트에 라임이 척척 들어맞는 가사를 진솔하게 내뱉는 플로우, 나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에미넴 내한공연 소식을 접하고 1초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한공연이 사실이라면 난 무조건 가야했다. 힙합 공연으로 잠실 올림픽 보조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랩퍼는 에미넴 밖에 없을 것이다. 데뷔 14년째인 에미넴은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랩퍼다.

콘서트 현장은 치열했다. 지산락페 라디오헤드 공연 때보다 더 깊숙한 곳이었다. 역시 공연은 치열하게 봐야 제맛. 내 주변의 관객들은 ‘Lose yourself’ 1절 통째로 떼창이 가능한 골수팬들이었다. 천하의 에미넴이 한국 공연에서 머리위 하트를 그렸다고 인터넷에 난리가 났던데, 영어랩 줄줄 따라하는 ‘머리 좋은’ 한국팬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충분히 그럴만 했다.

Dr. Dre의 깜짝 등장에도 관객들은 미친듯이 환호했더랬다. 내가 15년 전, 힙합의 역사를 더듬거리기 시작할 당시에 처음 접한 마스터피스가 Snoop Doggy Dogg 과 Dr. Dre [*]The Chronic]이었다. 두 앨범 모두 Dr. Dre가 프로듀싱한 앨범이며, 에미넴 1집 또한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레전드. 나 또한 두팔 벌려 소리 질러 맞이했다.

아무래도 [Recovery] 앨범 투어였던만큼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Not Afraid’ 였다. 웅장한 느낌의 인트로 훅을 수만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따라부르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공연을 보고 다시한번 든 생각인데, 앨범 레벨에서 본다면 [Recovery] 앨범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에미넴은 확실히 ‘회복’에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라디오헤드를 넘어서는 감동은 아니었지만, 역사적인 공연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7년 전쯤 시카고에서 Nas를 봤고 이번에 에미넴도 봤으니, 이제 힙합에서는 Wu-tang Clan과 The Root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힙합 크루는 Wu-tang Clan이며 The Root는 유독 라이브가 기대되는 팀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 대형 공연을 할 수 있는 랩퍼는 역시 에미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