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스톤 선정 2000년대 최고 명반 1위는 라디오헤드 [Kid A]였다. 100위 안에 앨범 4장이 선정된 밴드는 라디오헤드가 유일하며 30위 안에 3장이 선정되었다. 역대 락음악 명반 1,2위를 다투는 1990년대의 [OK computer]를 추억하지 않더라도 라디오헤드는 현재 진행형의 레전드이다.

‘라디오헤드’가 우리나라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팬들은 15년 넘게 이 날을 기다려 왔다. 지산밸리 락페스티벌 1일권은 14만원, 고속도로 IC 진입로에서부터 주차장까지 기어가는 데 걸린 2시간, 펜스 가까이 자리를 잡기 위해 서브헤드라이너 ‘엘비스 코스텔로’ 공연을 봐야했고 또 1시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기다림의 시간..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이유가 충분했다.

엘비스 코스텔로 공연이 끝나고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로 1시간을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나에게 주어진 공간이 어느 정도였냐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나는 아이팟으로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헤드의 곡들을 골라 들으며 차분히 공연 시간을 기다렸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곡인 ‘Jigsaw falling into place’은 다섯 번 정도 들었나보다.

예정된 시각 몇 분 전에 라디오헤드가 무대에 올랐다. 정시에 공연을 시작하는 거물급 밴드는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1시간을 기다린 와중에도 약간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이렇게 라디오헤드를 기다려왔던가 싶을 정도로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다.

라디오헤드 등장과 함께 빅탑스테이지 펜스 근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난 뭐 이런 압박과 혼란은 꽤 익숙하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이런 치열한 콘서트장이 그리웠다. 심장을 때리는 베이스드럼, 관객들의 떼창, 슬래머들과의 어깨놀이, 땀냄새 샴푸냄새가 뒤섞인 열띤 공기..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야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다. 기사를 보니 라디오헤드 공연에 3만 5천명이 모였다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미쳐있는 관객들과 함게 있었다.

라디오헤드의 무대는 정말 멋졌다. 특히 멀티비전의 연출이 환상적이었다. 멤버 개개인을 비추는 화면 분할, 리듬에 맞춰 전환되는 화면들, 조명과 멀티비전의 색깔 톤, 음악과의 싱크, 그 모든 것이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멋졌다.

공연 컨셉은 확실했다. [OK computer] 이전 분위기의 곡들은 부르지 않는 것이었다. [Kid A] 앨범 이후의 외계 음악으로 사람들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이 무대연출과 사운드의 통일된 컨셉이었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OK computer] 이전의 음악들을 너무 듣고 싶어했다. 그래서 [Karma Police]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미친 듯이 좋아하며 따라불렀다. 게다가 실제로 [Creep]을 불러줄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을텐데도 [Creep]을 불러달라는 외침이 종종 들려왔다.

예정된 공연 시간은 9:30~11:00pm으로 한시간 반이었다. 10:50pm이 되자 라디오헤드는 공연을 마치고 들어갔는데, 곧이어 시작된 앵콜 공연은 결국 50분 동안 이어진다. 11:30pm 되어 이제는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톰 요크는 (마치 스티브 잡스처럼) “One more little one”이라고 멘트하더니 라디오헤드 최고의 대곡인 [Paranoid Android]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마지막 앵콜곡은 정말이지 관객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선물이었다.

나에게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앵콜 두번째 곡 [Exit Music]이었다. 한시간 반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상태에서 [OK computer]의 가장 차분하고 아름다운 곡을 듣게 되는 순간의 느낌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Exit Music] 전주를 들으면서부터 울컥하더니, 톰 요크가 가사의 첫 마디를 부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노래였다. 관객들도 이 곡만큼은 차분하게 들어주었고 나는 곡이 끝날 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어차피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내가 여태까지 본 락 콘서트 중 최고는 ‘Muse’ 내한공연이었는데, 이번에 순위를 뒤집었다. 라디오헤드가 [Kid A] 앨범 이후로 추구해 온 외계 음악이 콘서트에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어떻게 감정을 움직이는지 몸으로 알게 되었다. 라디오헤드는, 팬들에게 사랑받던 음악 스타일을 버리고, 어떤 장르로 한정할 수 없는 실험적인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어 내면서도, 결국에는 팬들의 공감을 얻어내고야마는 위대한 밴드였다. 그리고 라디오헤드는 20년 동안 한 번도 멤버를 바꾼 적이 없는데, 그들의 라이브 실력은 지상 최고 수준이었다.